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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를로-퐁티에 쉽게 접근해보자
    현대철학 2020. 6. 5. 08:56

    메를로-퐁티는 20C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들 중 한 명인데요. 그냥 여러 명 중에 한 명인 그런 학자는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철학자 중 한 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글을 너무 어렵게 써서 이해하는 게 되게 힘들긴 합니다. 저도 아직 멀었구요. 글을 어렵게 쓸 수밖에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내용 자체가 말로 표현하기 되게 힘든 내용이긴 하거든요.

    오늘은 메를로-퐁티의 심오한 철학의 얼개를 최대한 쉽게 잡을 수 있는 길이라고 제가 뽑아 본 세 가지 예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 예시는 모두 상식을 깨뜨리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그냥 느끼면 될 거를 그동안 너무 생각하려고 했다...' 그렇게 주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시들을 보시면서 ‘이 사람은 별 특이한 생각을 다 했구나.’ 이 정도를 간단하게 느끼시고, 제가 다음에 이론적으로 접근한 약간 심화버전도 올릴 테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데카르트의 논변 뒤집기

     

    데카르트의 회의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현실을 살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겁습니다. 마치 매트릭스나 통 속의 뇌처럼요. 이런 데카르트의 생각을 반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근데 메를로-퐁티는 뭐라고 하냐면, "너는 꿈이 뭐고 현실이 뭔지 이미 아니까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물어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진짜 현실인지 꿈인지 어떻게 알지?’ 이런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현실이 뭐고 꿈이 뭔지 대략 알고 그 두 단어를 구별해서 사용할 줄 안다는 얘기 아니야? 이런 겁니다. 만약에 현실이 뭐고 꿈이 뭔지를 아예 감도 못 잡는다고 해봅시다. 그럼 ‘뭐가 현실이고 뭐가 꿈이지?’ 이런 질문이 의미가 있을까요? 이게 안동찜닭이야 닭볶음탕이야? 이렇게 물어보면서 안동찜닭이 뭔지 닭볶음탕이 뭔지 전혀 몰라봐요. 그러면 이건 안동찜닭이야 라고 알려준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뭔지도 모르는데. 이건 안동찜닭이야 해도 ‘아 그래?’ 이럴 거고, 이건 닭볶음탕이야 해도 ‘아 그래?’ 이럴 거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현실이 뭐고 꿈이 뭔지를 진짜 모르면, 이게 꿈이야 해도 ‘아~ 이게 꿈이구나.’ 할 거고, 이게 현실이야 해도 ‘아~ 이게 현실이구나.’ 할 겁니다. 그 질문이 별 의미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말을 쓰고, ‘꿈’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것들은 현실이라고 하고, 이런 것들은 꿈이라고 하는구나... 라는 걸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뭐를 현실이라고 불러야 되고 뭐를 꿈이라고 불러야 되는지 잘 압니다. 우리는 이미 꿈을 많이 꿔봤고,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아봤습니다. 그런 경험이 먼저 있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꿈과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근데 데카르트 같은 사람은 마치 꿈이라는 개념과 현실이라는 개념이 먼저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그 개념들로 우리 경험을 설명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 경험이 먼저 있으니까 그 개념들이 생겨난 건데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놓고 갑자기 ‘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어떻게 알지?’ 이렇게 뒷북을 친다는 겁니다. 순서를 바꿔서 잘못 생각해 놓고 마치 되게 심오한 문제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메를로-퐁티의 입장에 따르면 “너 지금 현실인지 꿈인지 알아, 몰라.” 이렇게 물어서 “알아.” 하면은 정상, “어... 모르겠는데.” 하면 비정상 이겁니다. 그 둘을 헷갈려하는 순간 이미 철학자들이 설정해놓은 이상한 틀에 빠지는 거라는 겁니다.

    참신하지 않습니까? 메를로-퐁티의 생각은 굉장히 재밌습니다.

     

     

    2. 점

    이 점에 관한 문제는 디지털카메 화소를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수많은 미세한 점들이 모여서 화면을 이루잖아요. 그런 걸 보면은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최소 단위의 점들이 있고, 그것들이 모여서 우리 눈앞에 세상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아마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거든요. 이러한 생각을 옛날 철학자인 흄이 이렇게 증명했다고 합니다. '흰 종이에 검은 점 하나를 탁 찍어놓고 점점 멀리 떨어뜨려봐라. 그러다보면 점이 점점 약하게 보이다가 언젠가는 아예 안 보일 것이다. 그러면 그 아예 안 보이기 직전 순간에 그 미세한 점이 바로 우리 시각을 이루는 최소단위 아니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최소단위들이 모여서 점도 되고, 도형도 되고, 그러는 것 같잖아요.

    근데 여기서 메를로-퐁티는 역시 기발한 생각을 합니다. 종이를 멀리하다가 점이 완전히 안 보이게 될 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나요? 아닙니다. 종이가 보입니다. 흰 종이가 너무나 잘 보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점점 작아지다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순간이 있는 게 아닙니다. 검은 점이 흰 배경에 의해서 먹혀버리는 순간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이미 흰 종이라는 배경이 있었고, 검은 점은 그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배경과의 연관 속에서, 그 배경에 의해서 뒷받침 되어서 드러날 수 있었던 겁니다. 근데 마치 흰 종이라는 배경을 아무 중요한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니까, 검은 점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게 작아지면 최소단위까지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겁니다. 시각은 항상 먼저 전체로서 주어지는데. 배경까지 포함된 전체로서 주어지는데. 그 전체를 이미 봐놓고서 ‘어, 나 방금 최소단위 봤다.’ 이렇게 착각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항상 전체가 이미 있는데, 그 부분은 우리 생각으로 만들어낸 건데, 순서를 바꿔서 부분이 모여서 전체가 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메를로-퐁티는 그런 방식으로는 인간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3. 물체

     

    마지만 예시는 방금 점의 예시와 좀 비슷합니다. 많은 분들은 아마 어떤 물체를 단독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예를 들어서 황소. 머릿속에 황소를 단독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할 거십니다. 그런데 한번 머릿속에 황소를 떠올려보시죠. 만약에 푸른 초원이나, 외양간을 같이 떠올리시면 잘못하신 겁니다. 황소만 떠올려야됩니다. 눈을 감고 다시 해보세요. ‘아... 황소, 황소....’ ‘어, 됐다! 황소만 있다!’ 라고 생각하셨나요? 근데? 사실 뭐가 있죠? 검은 배경이 있지 않나요? 색깔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뭔가 배경이 있죠? 그 배경 없앨 수 있으세요? 없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많이 해봤는데, 안 됩니다. 메를로-퐁티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겁니다. 어떠한 물체도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물체, 삼각형 같은 거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때도 그런데,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배경 없이 보이는 물체는 없습니다.

    근데 우리가 보통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건 어떻습니까? 각각의 단독적인 물체들이 있고, 그것들이 모여서 세상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자꾸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메를로-퐁티는 그게 서양의 잘못된 철학이 남긴 잘못된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깨뜨리려고 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일단 그 뿌리 깊은 경향성을 깨뜨리고 나면 세상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겁니다. 괜히 추상적으로 생각해서 현실을 왜곡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 그게 메를로-퐁티의 정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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